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즈키 오뎅/작중 행적 (문단 편집) == 쿠리의 다이묘 오뎅 == 59년 전, 당시 [[와노쿠니]]의 쇼군 '[[코즈키 스키야키]]'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신체능력 하나는 될성부른 나무였는지 '''돌도 되기 전에''' 자신의 유모를 내던졌고 '''2살 때''' 토끼 두 마리를 동시에 잡는 놀라운 다릿심을 보였다. 그리고 '''4살 때'''는 큰 바위를 던져서 곰을 격파하기까지 하였다. 이때 도공 [[시모츠키 코자부로]]에게 명검 [[엔마]]도 선물받았다. 그런데 그 뒤로는 이 기질이 폭주해서 명색이 쇼군의 [[적장자]]라는 인간이 어지간한 시정잡배만도 못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불과 '''6살''' 때부터 성의 돈으로 유곽을 쏘다니질 않나, '''8살''' 때는 도박장을 넘나들다 술기운에 도박꾼들과 크게 싸웠고, 이듬해 와노쿠니의 야쿠자들이 자신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도박장 출입을 금지하자 열받아서는 도박장에 불을 질러 야쿠자를 상대로 한바탕 난투극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전성기 시절의 [[효고로]]랑 안면을 튼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효고로]]는 [[노안|이 당시 나이 19세다]].] 결국 '''10살''' 때 폭행상해 사건으로 체포당해 채석장에서 일개 죄수로서 복역했는데, 의외의 재능을 발휘해서 석공 우두머리까지 올라갔다. 복역 후 제딴에는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 주민들을 돕는답시고 강을 꺾어서 도시에 물을 댔다가 대규모 수해를 야기했다. 거기에 수해를 틈타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출국'을 시도한 것이 발각되어 결국 다시 체포명령이 떨어졌다. 이때 오뎅의 나이 '''14세.''' 다음 해에는 어느 절을 점령해서는 밤마다 임자가 있든 말든 도시의 여자들을 납치해서 그곳을 하렘으로 만들었다.[* 그 여자들은 모두 자유의 몸이었지만 오뎅의 매력에 빠져서 아무도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부친인 스키야키에게도 요괴나 할 짓이라고 마구 까였다. 당연히 납치된 여인들의 부모, 남편, 연인들은 분노해서 오뎅에게 달려들었지만 사무라이들의 도움에도 번번이 격퇴당했다. 이것의 소위 말하는 '하렘의 난'이다.[* 이 사건 이후로 오뎅이 거리에 나타나면 주민들은 모두 여자들을 숨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후술할 패륜적인 행위의 진의를 알고는 여성들이 오뎅에게 반해서 떠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숨기라는 게 스스로 오뎅을 따라갈까봐 숨긴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오뎅에게 반한 컷에서 성인 여성들뿐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도 눈에 하트를 띄운 모습을 보였고, 하렘을 펼쳤다는 컷에서도 여자들은 자유로웠다고 묘사하며 같이 즐기는 듯이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즉, 여성들이 납치되었다기 보다 오뎅에게 감화되어 자발적으로 따랐을 수도 있다는 것.] 그 외에도 와노쿠니가 고집하는 쇄국에 의문을 품고 항해에 재능도 없으면서 총 '''37번'''의 위법출항을 시도했다. 결국 18살이 되었을 때, 아들의 기행에 지칠 대로 지친 스키야키는 오뎅을 '''호적에서 파기로 결심했다.''' 한편 오뎅은 38번째 출항 시도에 실패하고 꽃의 도읍으로 돌아와, 술약속을 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카츠조'라는 노인의 화장식에 난입해서 유족들의 뭐라 하든 말든 '''[[고인능욕|카츠조의 유골 위에 냄비를 올려서 오뎅탕을 끓여먹었다.]]''' 냄비를 모두 비우고 나서야 술이 든 표주박을 공양한 뒤 실례했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식사를 끝내고 나갈 때 "다음에 마시는 건 저세상에서다." 라고 말하는 걸 보면 세상을 뜬 친구에게 본인 나름대로 애도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카츠조 또한 과격한 성격이었는지 그의 추모에 화답하는 듯한 연출이 나온다. 하지만 방식이 제멋대로인 데다 유족들에게 말 한 마디 없이 저런 짓을 저질러버려 결과적으로 유족들의 마음에 상처만 주었다. 이것이 오뎅의 '''첫 직접 등장'''이었고 그럼에도 여성들이 반하는 장면이 나온 탓에 독자들의 첫인상은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망나니→영웅이라는 그의 캐릭터성을 볼 때, 작가의 의도상 오뎅이라는 인물은 과거엔 부정못할 망나니였으나 나중에는 와노쿠니의 영웅이 되는 것이었으나, 오뎅탕 장면은 과거뿐만 아니라 오뎅의 인생 전체에서 욕을 먹는 장면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뎅탕 한 장면 때문에 오뎅이라는 인물 자체와 그 에피소드를 싫어하는 독자들이 많은 걸 감안하면 이 부분은 '''연출 실패'''다. 후술할 행적들로 오뎅의 서사 자체는 괜찮게 보는 독자들도 이 오뎅탕 사건이 폭탄이라는 건 부정 안한다.] 그 뒤 [[킨에몬]]이 데리고 있는 자신의 새끼를 구하기 위해서 꽃의 도읍을 습격한 거대한 멧돼지 '산의 신'을 일도양단하여 도시를 구원했다.[* 여담으로 '''산의 신은 죽지 않았다.''' 몸이 위와 아래로 나뉘어서 완전히 분리되었는데 그걸 완전히 꿰매 산의 신을 붙여놓았다. 100권 SBS에 의하면 오뎅의 칼 솜씨가 너무 깔끔했던 나머지 그대로 붙여놓았더니 저절로 아물었다나 뭐라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일도양단을 하고도 살아있는게 너무 무리수라고 판단했는지 그대로 베어 죽이는 걸로 끝이다.] 직후 산의 신을 불러들인 것이 자신이라고 고백하려는 킨에몬의 입을 막은 뒤, 덤덤하게 스키야키가 보낸 절연장과 도시추방 명령을 받아들이고 꽃의 도읍을 떠나 자신을 따라온 킨에몬, [[덴지로]]와 함께 [[시모츠키 야스이에]]가 다스리는 '하쿠마이'로 향했다.[* 이때 꽃의 도읍의 시민들은 그런 오뎅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마워해야 되는데 악인이라 생각하는 등 내적으로 갈등하며 발이 움직이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꽃의 도읍이 기울었다나 기울지 않았다나" 하는 나레이션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서 야스이에의 몸종으로 일하던 '''[[쿠로즈미 오로치]]'''와 처음 만났다. 야스이에의 저택에 머무는 동안 야스이에가 부하들의 전의를 복돋아주는 모습을 보고 "과연 와노쿠니 최강의 사무라이들이다."라고 감탄했다. 이에 야스이에가 명색이 쇼군의 아들이 언제까지 이런 곳에 있을 생각이냐고 묻자 능청스럽게 호적에서 파였다고 대꾸하면서 "다들 말하더라. 코즈키 스키야키의 후계자는 오뎅이 아니라 야스이에라고!!"라고 말했다. 결국 이 말에 뿔이 난 야스이에에게 "사랑의 [[채찍]]이라고 생각하고 견뎌내라!!"라고 꾸짖음을 듣고 [[꿀밤]]을 맞았다. 그럼에도 나는 바다에 나가고 싶다, 너무 답답하다는 말을 늘어놓다가 결국 또 맞았다. 야스이에의 손맛이 매운지 호적에서 파였다면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후 와노쿠니의 암이라고 불리는 '쿠리'에 [[아슈라 동자]]라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와노쿠니 곳곳을 떠돌며 쿠리로 향했다. 도중에 [[이조(원피스)|이조]] & [[키쿠노죠|키쿠]] 형제, [[칸주로]], [[라이조]]를 만나 부하로 거두었다.[* 차례대로 링고, 키비, 우동에서 만났다. 사실 오뎅은 딱히 부하를 만들 생각이 없었지만 이 4명이 킨에몬, 덴지로처럼 멋대로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쿠리 인근에 도착한 오뎅은 부하들을 남겨두고 혈혈단신으로 꼬박 하루동안 싸움을 벌여 쿠리의 모든 무법자들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 오뎅도 슈텐마루와 쿠리의 수많은 무법자들을 상대하기는 버거웠는지, 옷은 다 찢어지고 반쯤 피투성이가 되고 화살 2발을 맞는 등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파일:쿠리 다이묘 오뎅.jpg]] 너무나도 '갑갑한' 쿠리의 현실을 몸소 체험한 오뎅은 이 어쩔 도리가 없는 쓰레기들의 왕이 되기로 결심하고 지옥과도 같았던 쿠리를 2년 만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활기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본인은 가신들이 알아서 해준 것일 뿐이지 자신은 아무것도 못했다고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이 쾌거를 인정한 스키야키는 오뎅과의 절연을 풀고 20살이 된 아들을 쿠리의 다이묘로 삼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